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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NBA 배신의 역사 : 선수 편

히이루 2021. 9. 23. 12:43

NBA 배신의 역사 : 선수 편

 

 

<개요>

얼마 전에 축구에서는 호날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팀을 옮기면서 친정으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호날두가 맨유와 계약했다는 오피셜이 뜨기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트가 아닌 맨유의 최대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로 갈 것이고 오피셜이 곧 뜰 것처럼 이야기가 나왔었죠. 실상은 맨시티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지만 당시 맨유의 팬들은 호날두를 배신자라고 불렀습니다. 이 외에도 스포츠에서는 성수가 팀을 옮기는 과정에서 팀 혹은 선수가 소위 통수를 치고 이별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NBA에서는 어떠한 배신의 역사가 있었는지 한 번 가볍게 살펴보겠습니다.

 

순서는 선수의 경력이나 배신의 충격과 무관하게 작성되었습니다.

 

1. 칼 말론

> 배신 : 칼 말론 from 유타 to LA 레이커스

1985년에 13순위로 당당하게 유타에 지명되면서 존 스탁턴과 함께 많은 역사를 쓴 전설의 파워포워드 칼 말론도 배신의 역사에 이름을 당당(?)하게 올렸다. 유타에 있으면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면서 정규 시즌 MVP 2회 / 올-NBA 14회(퍼스트 11회) / 올스타 14회(올스타 MVP 2회) / 올 디펜스 팀 4회 / 명예의 전당 / 올해의 루키 등 엄청난 업적을 이뤄냈지만 우승에 대한 욕망은 그를 배신의 길로 들어가게 했다. 전년도까지 무려 1900만 달러를 받던 말론은 LA 레이커스와 헐값인 150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게리 페이튼,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과 함께 반지 원정대를 꾸렸다. 물론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론의 배신은 리빌딩을 하고자 하는 유타에 도움이 되었지만, 파트너였던 존 스탁턴이 미련 없이 원클럽맨으로 은퇴한 것과 대비되고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만큼 프랜차이즈에게는 큰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2. 제이슨 키드

> 배신 : 제이슨 키드 to 뉴욕 닉스

1984년 2순위로 댈러스에 드래프트되었던 제이슨 키드. 이후 여러 팀에서 뛰면서 우승 1회 / 올스타 10회 / 올-NBA 6회 / 올-수비팀 9회 / 올해의 루키 / 어시스트왕 5회 / 명예의 전당 등의 금자탑을 쌓았지만, 이러한 레전드도 배신자 딱지가 붙기도 했다.

제이슨 키드는 넷츠를 떠나 친정팀인 댈러스에 돌아오면서 팀을 덕 노비츠기 그리고 제이슨 테리와 함께 트로피를 차지했다. 이후 댈러스 혹은 구단주인 마크 큐반의 플랜은 키드가 팀에서 2년 더 뛰고 바로 프런트 오피스의 한자리를 내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디테일한 이야기는 큐반 구단주와 제이슨 키드 사이에서 구두로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두로 합의가 이루어진 같은 날 오후, 제이슨 키드는 뉴욕 닉스와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뉴욕에서 계약한 기간과 금액은 마크 큐반과 함께 이야기했던 기간과 금액이 정확히 일치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댈러스의 감독직을 맡았지만, 그 당시 마크 큐반은 제이슨 키드에게 많이 화가 났으며 실제로 팀의 레전드에 대해서 언론에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지금으로서는 J. Kidd의 번호를 영구결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3. 디안드레 조던

> 배신 : 디안드레 조던 댈러스 통수 사건

비록 팀원으로서 댈러스와 마크 큐반 구단주의 통수를 치지 않았고, 후에 이야기할 르브론 같은 통수 효과는 없었지만 디안드레 조던의 배신 혹은 통수는 한 선수 혹은 인간으로서 이 선수에 대한 신의(?)를 잃게 만들기도 했다.

2015년 오프시즌 동안 댈러스는 타이슨 챈들러와 결별하고 나서 LA 클리퍼스의 디안드레 조던을 목표로 움직였다. 실제로 양측 모두 만족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졌는지 디안드레 조던은 마크 큐반과의 대화를 꽤나 즐겼다고 하며 구두로 4년 8천만 달러와 최대 계약을 맺기로 했다.

반대로 한발 늦었던 클리퍼스는 팀원을 붙잡기 위해 안달이 났어다. 어느 날 밤 디안드레 조던의 팀원이었던 크리스 폴과 그 외의 선수들이 디안드레 조던의 집에 찾아가 회의했다. 심지어 구단주인 스티브 발머도 그를 설득하려 했다. 결국엔 댈러스의 연락을 모두 차단하고 클리퍼스와 4년간 최대 8,8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마크 큐반 구단주는 다시 한번 1패를 기록했다. 솔직히 조던 입장에서는 우승 확률이 더 높은 팀을 선택하고 더 많은 돈을 받았기 때문에 개인에게는 더 똑똑한 무브였지만… 그 이후 커리어는??

 

4. 드와이트 하워드

>배신 : 드와이트의 연속 뚝배기 1타 올랜도 2타 LA 레이커스

2004년 1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입단한 드와이트 하워드는 팀의 완벽한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성가대 소년 등 선한 이미지로 팬층이 두꺼웠으며 스텐 벤 건디 감독이 짜준 양궁농구가 먹히면서 매해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했다. 대략적으로 07시즌에 첫 올스타+올 NBA 서드 팀, 08시즌 퍼스트 팀에 09시즌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가 될 정도로 매해 업그레이드하듯 쭉쭉 큰 것. 하지만 09시즌 파이널에서 아쉽게 우승을 놓친 하워드와 올랜도 매직은 이후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는데 실패했다. 그러면서 나온 것이 하워드가 직접 스탠 밴 건디를 해고하려고 했다는 루머다. 이러한 루머는 팀에 헌신하는 성가대 소년의 이미지에 빠진 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배신감을 들게 만들었다. 시간의 흐름을 보면 2011-12시즌에 선수노조 파업으로 인해 단축시즌이 확정된 이후 하워드가 팀에게 직접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당시 하워드는 ‘나는 올랜도를 정말 사랑하고 잔류하고 싶지만 현재의 팀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떠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특히 하워드가 올랜도 매직의 단장인 오티스 스미스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이는 하워드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말이다. 큰 이유 두 개(1: 지역 라이벌 마이애미 히트의 빅 3 & 양궁농구에서 리바 머신 힘들어서 / 2: 악덕 에이전트 댄 페 - 자기의 이익을 위해 선수를 적극적으로 구워삶아 협상에 나서는 악덕 에이전트)

결국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트레이드 대신 자신의 2013년 시즌 옵션을 행사하여 1년 더 올랜도 매직에 잔류하게 되었으나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뉴욕 닉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감독 스탠 밴 건디가 인터뷰하던 도중 일어난 사건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중요한 전국 방송 경기를 앞두고 스탠 밴건디가 “나 만약 올랜도 감독 잘려도 상관없어. 그냥 좀 쉬다가 다시 일자리 구하면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버렸고, 올랜도 구단 측에게 하워드가 자기의 해임을 요구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언론에 밝혀버렸다. 멘붕이지만 그대로 진행되던 인터뷰에서 카멜로 앤서니를 어떻게 막느냐만 궁리하고 있다고 말하던 도중 뜬금없이 하워드가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라고 인터뷰 도중 끼어들고, 밴 건디는 인터뷰 중이었고 카멜로 어떻게 막을 건지 기자들한테 얘기 중이었고 이렇게 된 거 나머지는 하워드에게 물어보라며 슬쩍 빠졌고, 하워드는 당연히 앞에 스탠 밴 건디가 까발린 감독 해고 요구에 대해 "나 그런 적 없는데?" 감독이 직접 말했다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들어본 적 없어"라고 답변을 회피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결국 그 시즌 감독은 경질되고 드와이트 하워드도 팀의 성적과 자신의 팀 내 역할, 우승에 대한 조바심 등 악재가 많긴 했어도 프로답지 못한 행보를 보이면서 팀을 배신하고 레이커스로 떠났다.

 

레이커스에서는 코비 / 파우 가솔 / 스티브 내쉬와 함께 빅 4를 결성, 반지원정대 2기를 결성했으나 픽앤롤을 못해서 내쉬한테 욕먹고 코비 브라이언트와의 불화 때문에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던 시즌을 끝내고 다시 하워드라마를 개막했다. 2013년 7월 10일 자신의 거취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어프로치 한 휴스턴에 사인 앤 트레이드도 아니고 그냥 4년 계약을 맺어버렸는데, 레이커스와 계약하거나 계약 후 트레이드라면 5년 계약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4년 계약을 감수하고 떠난 걸 보면 레이커스 생활이 어지간히 안 맞았던 듯. 샤킬 오닐은 "하워드는 LA의 압박감을 견딜 수 없었다."라고 디스 하기도 했다. 이 이후로 하워드가 저니맨이 되고 이제는 정신 차린 베테랑이 되었다.

 

5. 카를로스 부저

배신 : 카를로스 부저 from 클리블랜드 to 유타 재즈(feat. No loyalty)

카를로스 부저는 2002년 2라운드, 전체 35순위로 클리블랜드에 픽이 되면서 NBA에 데뷔했다. 약 13년의 세월을 NBA에서 보내고 이후 중국에서 커리어를 마감한 부저는 NBA에서 나름의 족적을 남겼다. 올스타 2회 / 올 NBA1회, 어떻게 보면 슈퍼스타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부저가 2004년 오프시즌에 클리블랜드를 배신한 방식은 통수의 슈퍼스타 수준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커리어 초반 르브론과 함께 잘 지냈던 부저는 2년 동안 평균 12.6득점 9.4리바운드를 기록, 더블-더블급의 활약을 펼치면서 자신이 재능이 있음을 어필했었다. 이것 때문에 클리블랜드에서는 카를로스 부저에게 좋은 샐러리를 주고 오래 붙잡아 놓고 대권을 도전하기 원했었다. 그래서 클리블랜드는 카를로스 부저가 RFA가 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후 6년 3900만 달러 계약을 제안했고 그것은 양측 모두에게 매력적인 수치였으나 유타 재즈는 그가 동의한 6년 7천만 달러 계약으로 그를 영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클리블랜드는 샐러리캡의 압박으로 매칭을 할 수 없어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당시 캐브스 구단주였던 고든 건드는 "마지막 분석에서 카를로스를 믿고 그가 요구한 존경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그는 그 대가로 그런 신뢰와 존경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Boozer는 "약속은 없었다"라고 말하며 Gund의 말을 거절합니다. Boozer와 Cleveland Cavaliers 매니지먼트 사이에는 여전히 냉혹한 감정이 있습니다.

 

6. 케빈 듀란트

배신 : 케빈 듀란트 to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시애틀 슈퍼소닉스 시절부터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슈퍼스타 반열에 오르면서 오클라호마시티를 대표하는 얼굴로 발돋움했고, 실제로 우승의 문턱까지 밟아봤다. 이러한 슈퍼스타가 빌런의 길에 빠져들게 된 것은 지금 언급할 이적 사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5-16시즌 골든스테이트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이후, 플레이오프에 집중하느라 FA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밝히며 향후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리그 내에서는 잔류할 것으로 예상했다. NBA의 샐러리캡 규정상 원 소속팀과의 재계약을 해야 연봉을 더 받을 수 있는 구조이고 2016-17 시즌부터 TV 중계권료 계약으로 인해 리그 전체 샐러리캡이 상승하기 때문에 그만큼 맥시멈 상한선도 올라가서, 최대한 늦게 FA 협상을 해야 더 큰 연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73승 골스를 7차전까지 몰아붙이면서 다음 시즌 우승후보로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우승을 노리는 듀란트가 굳이 팀을 옮길 동기도 적었다.

그럼에도 예상과 달리 듀란트는 오프시즌 시작과 함께 홈팀 썬더 외의 다른 팀을 부지런히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공식적으로 골든스테이트에 1+1년 연봉 총액 54.3m으로 계약했다.

슈퍼스타의 전격적인 이적에 팬들의 반응은 당연히 르브론 제임스의 마이애미 히트 이적 당시 더 디시전 사건에 버금갈 만큼 험악하고 격앙되었다. 유니폼 화형식은 기본에 온갖 격한 반응이 나오는 중.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듀란트는 과거 슈퍼팀 결성으로 우승에 도전하는 트렌드를 비판했지만 정작 본인이 전 시즌 최다승 기록을 세운 팀에 합류하며 슈퍼팀 결성의 화룡점정을 찍어버린 내로남불식 행태를 보였고, 게다가 골든스테이트는 파이널 진출의 목전에서 자신을 꺾은 팀이었다. 그 탓에 슈퍼스타로서의 자존심도 없냐는 식으로 안 그래도 많은 욕을 먹고 있던 판에 욕을 더 들어먹었다.

 

7. 르브론 제임스

배신 : 르브론 to 마이애미

마이클 조던 이후 최고의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는 르브론 제임스. 경력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만한 슈퍼스타이다. 이름값만큼이나 배신의 역사에 화려하게 이름을 올렸다. 클리블랜드 1기 시절에는 친구를 따라 명문팀을 포기한 의리남, 불우했던 가정환경을 극복한 효자, 독보적인 재능의 로컬 히어로에 백투백 MVP 수상자라는 이미지로 안티가 거의 없었다. 르브론도 인터뷰에서 팀에 남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 그 후 클리블랜드는 르브론을 잡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가했다. 르브론은 언론을 이용해서 밀당을 하면서 팬들을 조련했다. 자세한 이적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적으로 7월 9일, 르브론 제임스는 The Decision이라는 쇼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한다는 말을 전국에 알렸다.

"This fall, man, this is very tough, this fall, I'm going to take my talents to South Beach and join the Miami Heat."

이는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고, 이에 대해서 온갖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히트 팬들을 제외하면 부정적인 이야기였다.

충격이었던 이유는 1) 빅쓰리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맥시멈 연봉이 100% 확실한 3명의 톱클래스 FA 선수가 매우 절묘할 정도로 적은 액수를 균등하게 페이컷하고 팀에 안착했다는 것 2)이 조합은 사실상 담합이나 탬퍼링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세 선수가 각각 계약을 완료한 시점은 드웨인 웨이드(버드 권한 계약), 크리스 보쉬(사인 앤 트레이드), 마지막으로 르브론 제임스의 순서였는데 이 과정에서 너무나 노골적인 조작의 뉘앙스를 풍겼던 것이다. 특히, 마이애미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드웨인 웨이드의 경우, 크리스 보쉬와 르브론 제임스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사전에 입을 맞추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애매한 금액만 받았다. 더 놀라온 것은 그다음으로 마이애미에 안착한 크리스 보쉬 역시, 맥시멈 계약을 준비하던 수많은 팀을 뿌리지고 역시 애매한 수준의 페이컷을 하며 사인 앤 트레이드로 마이애미에 안착한다. 르브론 제임스 역시 애매한 수준의 페이컷으로 마이애미에 안착하고(동일한 사인 앤 트레이드), 결국 세 선수가 받게 된 연봉은 서로서로 정확하게 일치하게 된다. 그 당시 CBA 룰에 따르면, 각 선수의 루키 스케일(신인 계약 당시 지불 받는 금액)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의문투성이의 페이컷 수준을 통해 3명의 슈퍼스타가 한 팀에 모임과 동시에 정확하게 똑같은 연봉을 받게 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두 번째는 더 디시전이라는 이적 방식이었다. 원래 디시전이라는 방식은 미국의 고교 운동선수 유망주들의 대학 진학 결정이 시작되는 날인 내셔널 사이닝 데이를 앞두고, 뛰어난 고교 운동선수 유망주들이 복수의 명문대에서 입학 제의를 받았을 때 선수에게 결정권을 주고 학교 측에서 마련하는 이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