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COLUMN

스타 듀오가 이별할 때 : 농구계를 뒤흔든 이별들

히이루 2019. 3. 11. 13:45

2017년 12월 17일 번역글 (https://blog.naver.com/tensaisama/221165319676)


카이리 - 르브론, 슈퍼스타들의 지저분 한 이별 스토리의 한 축이 되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르브론 제임스와 카이리 어빙은 지난 3년간

다이내믹 듀오로 활약하며 팀을 3연속 파이널 무대로 올려놨으며 2016년에는 파이널 우승을 함께 했다. 하지만 어빙이 제임스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팀에 트레이드를 요구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역사적인 사례를 돌아 보는 것 외에는 어빙이 떠나고자 한 모든 이유들을 몇 년이나 수십 년이 지나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제임스-어빙과 같은 이별은 NBA에 처음 있는 일도 아니며 마지막일 리도 없다. 실제로 듀오 혹은 스타들의 지저분한 결말은 매년 NBA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어빙이 클리블랜드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NBA에서 지난 30년간 발생한 최악의 결별들을 몇 개 돌아봤다.




아이제아 토마스와 아드리안 댄틀리(1989 피스톤스)

1988 NBA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게 7게임 패배 후 피스톤스의 단장 Jack McCloskey는 팀의 최고 득점원인 아드리안 댄틀리를 메버릭스에서 방황 중이던 마크 아구이어와 1991년 드래프트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으로 트레이드했다. 댄틀리는 팀동료일 때도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던 피스톤스의 스타 아이제아 토마스를 향해 ‘토마스가 고향(시카고) 친구를 디트로이트로 데려오기 위해 팀을 압박을 넣었다’고 비난했다. 댄틀리가 떠난 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배드 보이즈’는 백투백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에 라디오 채널 디트로이트 스포츠 105.1과의 인터뷰에서 토마스를 "사기꾼"이라고 불렀다.

-- Marc J. Spears





샤킬 오닐과 앤퍼니 하더웨이(1996 매직)

돌이켜 보면 이 사례는 상당히 유치하다. 샤크(샤킬오닐)와 페니(앤퍼니 하더웨이)는 '누가 더 많은 인기를 끌 수 있는지', '누가 더 많은 신발을 팔 수 있는지', '누가 올랜도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와 같은 이유들로 다퉜다. 왕조를 구축할 수도 있었던 팀이 무너진 이유로서는 좋게 보기 어렵다. 오늘날 사람들은 1996년 올랜도가 오닐과의 재계약 협상 과정을 미숙하게 진행했다는 것과 오닐이 LA에서 뛰기를 갈망했다는 중요한 사실들을 잊고 있다. 페니는 샤킬과 함께 올림픽 출정식에 참석해 있는 동안 그의 이적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샤크의 이적은 현재의 NBA에까지 영향을 미친 대격변이었다.

-- Ramona Shelburne



짐 잭슨과 제이슨 키드 그리고 자말 매쉬번(1997 매버릭스)

90년대 NBA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와 같은 이별 이야기다. '정말로 토니 브랙스톤이 3J를 해체시켰는가?'

떠오르는 스타 트리오였던 제이슨 키드, 짐 잭슨 그리고 자말 매쉬번은 3년 만에 해체했다. 자존심(EGO)의 문제도 있었으며 브랙스톤을 포함한 '삼각관계 루머'로 키드와 잭슨의 사이는 멀어졌고 라커룸 내에서 몇 주 동안 대화도 하지 않았다.

루머에 대해 키드와 잭슨은 1년 동안 계속해서 부정했고 브랙스톤의 음반 판매량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브랜스톤은) 음반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루머에 대해)완전히 부정하지 않았고, 어느 정도 상황을 즐기기도 했어요.”라고 키드는 2002년 언급했다. “저는 그녀를 만난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런 이슈들은 젊은 팀들에게는 치명적이에요. 우리는 어떻게 상황을 극복해야 할지 전혀 몰랐죠."

매버릭스의 팬들은 2011년 키드가 복귀해 노비츠키를 도와 우승할 때까지 ‘Unbreak My Heart’를 불렀다.

-- Ohm Youngmisuk



케빈 가넷과 스테픈 마베리 (1999 팀버울브스)

이 이별 스토리의 가장 큰 원인은 1998-89년 직장폐쇄 혹은 직장폐쇄를 끝낸 단체 협정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맥스 계약' 상한선이 생기면서 마버리는 자신이 직장폐쇄 이전에 최대계약을 맺은 가넷만큼의 대우를 받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마버리의 팀통료였던 톰 구글리오타는 Jackie MacMullan에게 “만약 스테프(스테판 마버리 약칭)에게 물어보신다면 아마 스스로를 자책할거에요. 자신이 25점, 30점을 올려도 팀에서는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는 상화이었죠, 최고의 선수는 KG였어요.”

직장폐쇄 이후 얼마 안가 마버리는 소원을 성취했다. 직장폐쇄로 진행된 단축시즌에 18경기만을 출장한 뒤 뉴저지로 트레이드 되었다.

-- Adam Reisinger



마이클 조던과 위저즈 (2003 위저드)

2000년, 마이클 조던은 화려한 정장을 입고 자신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미디어의 관심과 함께 미국의 수도에 입성했다. 하지만 3년 반이 지난 후 조던은 위저즈의 구단주 Abe Pollin에 의해 해고되었으며 그의 메르세데스-벤츠 컨버터블 차량은 경기장 주차장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위저즈라는 프렌차이즈를 위해 은퇴를 번복하고 2년 반 동안 선수 겸 경영이사로서 활약하면서 마흔 살의 조던은 많은 티켓을 판매했지만 팀을 플레이오프 무대로 진출시키지는 못했다. 3차 은퇴 이후 구단 프론트진으로 완전한 복귀를 계획하던 중 구단 내 불화와 행복해하지 않는 선수들이 있음을 파악한 Pollin이 조던을 해고했다. 그는 조던과의 짧지만 격렬했던 미팅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각자 떠나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던은 “60분”이라고 말하면서 “(시간을)빼앗겼다.”고 했다.

Irene Pollin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남편과 조던의 결별과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경쟁심이 강한 마이클 조던과 Abe Pollin은 선수와 구단주로서노조협약에서 언쟁을 벌였던 경험이 있다.) “(해고는) 마이클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충격을 받았죠.”라고 적었다. “이후 어떤 점이 이행되고, 이행되지 않았는지 열띤 토론을 벌였어요. 하지만 Abe는 ‘서로 다른 방향’이라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마이클은 분개했어요. 굉장히 화가 났었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Abe가 방에서 걸어 나가자 마이클은 그를 향해 입에 담기 힘든 단어들을 내뱉었습니다. 이후 주차장으로 뛰쳐나가 일리노이 주(州) 번호판을 달고 있는 자신의 메르세데스-벤츠 컨버터블을 타고 뚜껑을 내린 채 곧 바로 시카고로 떠났습니다.”

-- Ohm Youngmisuk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 (2004레이커스)

2009년 피닉스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공동MVP를 수상하면서 이 이별 스토리에 대한 수습작업이 수년간 진행되었다. 최근 샤크의 말에 따르면 모든 불화는 “전부 마케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다. 그 둘의 적대감은 이별 전이나 후에도 굉장히 진심으로 다가왔다. 샤크는 “Kobe, how my ass taste?”라고 하면서 악명높은 프리스타일 랩을 했다. 한편 코비는 레이커스가 우승 타이틀을 두 개 더 획득한 뒤 샤크보다 더 많은 우승을 학 타이틀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인정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 Ramona Shelburne



레이 알렌 과 케빈 가넷/폴 피어스 (2012 셀틱스)

유서 깊은 보스턴 셀틱스의 역사에 선수로서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08년 '빅3'로서 우승 타이틀을 획득한 폴 피어스와 케빈 가넷 그리고 레이 알렌은 자신들의 이름을 당당히 역사에 새겼다. 하지만 2012년 알렌이 동료들에게 통보없이 라이벌 마이애미 히트로 떠나면서 피어스와 가넷, 알렌과 가드 라존 론도가 즐기던 화목함은 마무리 됐다.

오랫동안 서로에게 냉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어스와 알렌은 최근 화해를 했다. 과연 가넷과 론도가 그들의 우승 10주년을 자축하는 자리에 함께할지 궁금하다.

-- Marc J. Spears.



드와이트 하워드와 코비 브라이언트 (2013 레이커스)

이번에는 이별 스토리에서는 브라이언트가 '차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드와이트 하워드가 레이커스를 떠나 휴스턴 로켓츠로 갔다. 브라이언트는 하워트의 트위터 계정을 언팔로우한 뒤 파우 가솔과 함께한 자신의 사진을 #vamos #juntos #lakercorazon #vino라는 해쉬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를 번역하자면 'let's go, together, 레이커스의 심장과 Vino'(Vino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지기 전까지 36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득점왕을 경쟁했던 자신에게 스스로 지어준 별명이다.)이다.

-- Ramona Shelburne



케빈 듀란트와 러셀 웨스트브룩 (2016 썬더)

아마도 샤크와 코비 이래로 가장 지저분한 이별 스토리일 것이다. 먼저, 듀란트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도망가자 웨스트브룩은 인스타그램에 ‘악명 높은’ 컵케이크 이미지를 포스트했다. 이후 케빈 튜란트가 Players’ Tribune의 Durant’s Day에서 사진기자로 나선 것을 비꼬기 위해 웨스트브룩은 사진기자의 조끼를 입고 골든스테이트의 오라클 아레나에 나타났다. 듀란트와 그의 새 동료들은 컵케이크 이미지에 대한 반응을 보였고 OKC의 팬들은 컵케이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듀란트의 첫 친정팀 방문을 맞이 했다. 이 사태에 듀란트는 자신의 시그니처 신발에 레드벨벳을 덧붙이면서 조미료를 가하기도 했다. 이후 팬들의 트윗에 듀란트가 썬더의 감독 빌리 도너번과 구단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듀란트가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는 했지만 아직 끝이 난 것은 아니다.

-- Ramona Shelburne



카멜로 앤써니와 필 잭슨(2017년 닉스)

2014년에 잭슨이 앤써니가 자유계약으로 팀을 떠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둘의 관계는 삐꺽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태는 더 심각해져 갔다. 잭슨은 6월부터 앤써니의 트레이드를 공개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에게 앤써니는 자신이 추구하던 시스템에 녹아들지 못한 선수였다. 하지만 필은 카멜로를 떠나보내기 전에 먼저 경질되었다. 아직은 뉴욕에 남아있지만 그 곳에서의 멜로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 Ian Begley



르브론 제임스와 카이리 어빙 (2017년 캐벌리어스)

카이리 어빙이 무엇을 원해서 클리블랜드에게 트레이드를 요구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직 그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월요일에 있었던 'First Take'에서 그가 밝힌 트레이드 동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아직 르브론과 대화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한 편 르브론은 괜찮아 보였다. 르브론이 카이리 어빙의 트레이드와 관련되서 남긴 유일한 것은 운동 중에 배신을 암시하는 Meek Mill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 뿐이다.

-- Ramona Shelburne


원본 : When star duos implode: The famous breakups that shook basketball